브리우에가 전투

Brihuega, ,Spain
브리우에가 전투 브리우에가 전투 is one of the popular Interest located in ,Brihuega listed under Landmark in Brihuega 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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브리우에가 전투는 1710년 8월 8일,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한 전투로 일어났다. 스태너프 경 휘하의 영국군은 바르셀로나로 진군하다 방돔 공작(duc de Vendôme)의 군대에게 패하였다.스태너프는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. 겨우 작은 숫자의 영국 분견대가 바르셀로나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. 그리고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동맹자들은 패배로 인해 약화되었고, 붕괴하기 시작했다.서막7월 27일에 일어난 알메나라 전투에서의 승리와 8월 20일 거둔 사라고사 전투의 승리 이후에, 카를 대공을 지지하던 동맹군은 마드리드를 두 번째로 점령했다. 9월 21일 대공은 마드리드에 입성했다.그러나 1710년의 마드리드 공략은 1706년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다. 23,000명의 동맹군은 알메나라와 사라고사의 작전으로 2천을 잃었고, 게릴라와의 소규모 접전으로 인한 사상자와 질병으로 인해 두 카스티야(Castiles) 지방을 점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. 포르투갈은 이 상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.펠리페 5세의 할아버지 루이 14세가 그에게 빌려준 방돔 공작은 아일랜드 여단와 함께 비밀리에 스페인군을 지도할 수 있게 허락한 일부 프랑스인을 데리고 들어왔다. 이들은 스페인군의 장교가 되어 무너진 스페인 군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.동맹군은 주민들의 가난함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막과 같은 마드리드에 주둔한 동맹군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. 11월 9일, 그들은 마드리드를 버리고, 카탈로니아로 퇴각하기 시작했다. 카를 대공은 2,000명의 기병대와 함께 떠나, 서둘러 바르셀로나로 물러났다. 나머지 병력은 둘로 나뉘어 진군했는데, 이는 그들이 군량을 확보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. 12,000명의 주력을 지휘하던 구이도 슈타렘베르크는 스태너프 경이 지휘하는 5,000명의 영국군보다 하루 앞서 출발했다. 이러한 배치는 스페인군을 지휘하는 장군이 현 상황을 이용할 줄 아는 방돔이라는 데서 재난을 불러왔다.전투이러한 상황에서 방돔은 직접 탈라베라(Talavera)에서 그의 군대를 이끌고 출진하고, 퇴각하는 동맹군을 이런 계절에, 이런 지방에서 나올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기 시작했다. 그는 밤낮으로 진군하였다. 그는 범람하는 헤나레스(Henares)의 하천을 그의 기병대 선두에 서서 건넜고, 며칠 후 브리우에가에 도착해 동맹군의 좌익을 담당하던 스태너프를 따라잡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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